심은록 (미술비평, 2016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큐레이터)
화가 권순철 하면,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화면에 가득 차게 그려진 <얼굴> 작품들은 우리가 텔레비전이나 영화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는 잘생기고 매끈한 얼굴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제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생생한 얼굴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아니다. 그러나 삶의 어려움과 노고가 그대로 담겨 있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얼굴이다. 병원 대기실, 역전, 시장, 거리, 등에서 그림과 비슷한 인상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림 속의 인물이 겪어온 삶이 하나둘씩 읽히기 시작한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의 뜨거운 태양 자국이 촌로의 얼굴에 붉은 톤으로 남아 있다. 몇 년 전 겨울, 뼛속까지 후비고 들어오는 칼바람에 거칠어진 거리 행상의 얼굴은 그 피부만큼 거친 터치로 재현되었다. 이러한 삶의 고단함이 지층처럼 한 켜 한 켜 쌓여가듯 캔버스 상의 마티에르는 점점 더 두꺼워진다. 커다란 캔버스가 가득 차도록 크게 얼굴을 그리는데도, 그 인물의 삶을 모두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는지, 머리 일부가 화면 밖으로 밀려나 관람객의 상상에 맡기기도 한다.
프루스트의 마들렌느 과자처럼, 오래전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며 이 얼굴들이 친숙하게 다가온다. 얼굴 너머로, 가족을 위해 평생 일한 뒤 은퇴한 것이 죄인 양 고개 숙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이고, 세월호로 인해 죽어간 넋이나, 분단된 한국의 대지가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얼굴들이 좀 더 심정[추상]적으로 재현되어 <넋> 시리즈가 되고, 얼굴이 좀더 공간화(空間化)가 되고 보편화가 되면서 <산>이나 ‘풍경’ 시리즈로 전개된다. 그래서, 권순철의 <얼굴>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곳에서는 얼굴의 주인공이 삶을 함께 나눈 자연, 대지, 산, 등이 보인다. 생의 고통, 늙음, 병,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 그 어느 하나도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다 받아내고 겪어내며 한 켜 한 켜 지층처럼 얼굴에 담긴다. 때로는 그들의 삶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다가와서 외면하고도 싶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과 애처로운 심정을 누르며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면, 거기에는 그 모든것을 삭히고 극복한 승화된 얼굴과 삶에 대한 경외감이 드러난다.
권순철은 대학 때부터 한국인의 고유한 얼굴에 관심을 뒀으며, 골상구조에 대한 해부학과 미학을 공부하여 “한국미술에 나타난 얼굴 형태에 관한 고찰”이라는 석사논문을 집필하는 등 학문적인 연구도 하면서 동시에 이를 작품으로 표현해 왔다. 그가 그린 사람들만 모아도 족히 한 도시의 인구는 될 것이다. 그가 오랜 기간 얼굴에 집착하는 이유는, 얼굴이 담아내는 온갖 삶의 지층과 이를 묵직하게 승화해 내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또한, 한국인 고유의 얼굴을 상기시키려는 작가의 소명도 있다. 급속히 서구화되는 한국인의 체형이나 얼굴은 50년 전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권순철 작가는 “한국인 고유의 얼굴 상과 체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예를 들어, 신사임당의 외모는 비너스와 전혀 다르지만, 비너스에게서 느낄 수 없는 품위, 자애, 지혜가 넘쳐흐른다. 그는 “한국 미인대회의 기준을 서구 비너스에 맞추기에 한국 여성들의 열등감을 고조시킨다”며, “아름다움이란 일괄적이지 않고 다양하기에 더욱 그 묘미와 깊이가 있다. 더 늦기 전에 해부학자들, 인류학자들 그리고 작가들이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연구하고 분석하여 그 가치를 알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1989년 도불한 권순철 작가는, 1991년 한국작가 수 명과 함께 파리 근교의 이씨레뮬리노 시에 있는 옛 탱크정비공장을 개조하여 46개의 아틀리에를 만들었다. 그리고 운영을 위해 다국적 작가로 구성된 소나무 회[초대회장 권순철]를 창설했다. 이 소나무 회는 국제적인 교류를 활성화하고, 이씨레뮬리노 공장지대를 예술지역으로 변화시키는 등, 한국 미술사에서 전대미문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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