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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현대미술관회

김병기 화백 백수전

Nam June Paik


김희영 (국민대 교수, 미술사 박사)


김병기,바람이 일어나다 (Le vent se lève), 캔버스에 유채 162x112.1cm, 2016

이야기 하나 - 백세청풍전 ‘바람이 일어나다’


바야흐로 세계기록이 세워지는 현장이었다. 올 4월로 만 백세가 된 김병기(金秉騏) 서양화가 전시회가 바로 그 자리. 그것도 회고전이 아닌 신작전이었다. 뜻 깊은 행사답게 전시회 타이틀도 둘이다. 하나는 “바람이 일어나다”, 또 하나는 “백세청풍(百世淸風).”


주제(主題)는 문청(文靑)시절부터 좋아했다는 프랑스 시인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한 구절 “바람이 일어나다. 살아야 한다.”에서 따왔다. 분단과 6.25 등 생사를 넘나드는 파고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던 당신의 백년 개인사가 절대가난 등 갖가지 질곡을 압축적으로 이겨낸 끝에 나라의 체통이 당당해진 대한민국 현대사를 직접 목격한 감격의 말이다. 해방직후 북한 미술동맹 서기장, 6.25때는 남한의 종군화가단 부단장을 지낸 전중세대(war generation)의 독백이 이만할 수가 없다. 부제(副題) 백세청풍은 오롯이 개인적 성취에 대한 자부심이다. “맑고 높은 절개가 오래도록 전해진다.”는 뜻의 사자성어는 한민족 핏줄 모두가 꿈꾸는 경지인 것. 서울 북악산 아래 옛 돌에 주자(朱子) 글씨로 새긴 석각(石刻)도 있고, 이 말을 좋아했던 안중근 의사가 그 서체를 따라 쓴 글씨도 있다.


이 사자성어가 개인적으로 그럴싸함은 글귀 가운데 “인간 세(世)”를 패러디해서 “나이 세(歲)”로 대신 읽고 나면 백살을 맞은 ‘청풍 김씨’ 당신이 지금도 매일같이 “맑은 바람”으로 그림을 제작하는 일상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당연히 백살의 나이에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는 자부심이 이만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2014년 말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가진 뒤로 2015년 봄부터 서울에서 제작한 10여점을 앞세운 전시회였다. 세계적으로 그림 제작의 최고령 기록은 피카소일 것이다. 93세로 타계하기 일 년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누구보다 피카소를 존경해온 이가 김병기인데, 그림 스타일은 몰라도 그림제작의 나이로는 그이를 저만치 물리쳤다.


부귀를 들먹이긴 하지만 인간 복록에서 수복(壽福)만한 것이 없다. 한국현대미술을 일군 명인들 가운데 가장 장수하는 분이다. 마라톤 선수처럼 장거리를 달려온 덕분에 그동안 이중섭 ‘단거리 선수’나 김환기 ‘중거리 선수’를 따듯하게 보듬어서 그들의 미술이 이 시대 애호가들의 눈높이 사랑이 되게끔 말품을 팔아주었다. 소학교 한반이던 이중섭은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그림으로 승화시켜준 리얼리스트이고, 동경의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서 처음 만난 뒤로 미국 체류 중에도 줄곧 교유를 나눴던 김환기는 한국 전통의 풍류정신을 뉴욕의 세계미술 현장까지 끌고 간 경우라고 치켜세웠다. 그렇게 가까웠던 화가들을 현창하는 그의 빼어난 수사(修辭)에 감복했던 애호가들은 언뜻 그렇다면 김병기는 이중섭•김환기 주연을 떠받치는 조연이 아닌가, 그런 인상도 받곤 했다. 백세시대가 왔지만 1세기를 헤아리는 건강 장수는 꿈같은 현실이다. 고인이 된 명인들의 탄생 백년을 기억하는 것도 인생백년이 그렇게 어렵고 그만큼 희귀하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이중섭과 유영국을 기리는 전시회 개최의 까닭도 거기에 있다.


김병기・유영국・이중섭은 동갑이면서 일본 문화학원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문수학했다. 절친할 수밖에 없었다.1) 1965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김병기가 1980년대 중반, 모처럼 서울 출입을 하자 그를 환대­­­하는 밥자리를 마련한 이도 유영국이었다. 거기서 아주 뜻밖에도 “침묵은 금, 웅변은 은”이란 일본 속담을 신봉하듯, 과묵하기 짝이 없던 유영국이 기어코 한마디 던졌다. “중섭처럼 일찍 죽지 못한 것이 통한!”이라고. 당신 그림 값이 중섭에게 턱없이 못 미친다는 한탄으로 언뜻 들렸다.


화가가 그림 값을 말하는 법이 아니라는 소신의 김병기는 못 들을 말을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그게 아니었다. 내남없이 그 시절 화가들은 그림으로 생활할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한즉 이중섭의 요절을 아쉬워했던 눌변 유영국의 ‘빈말’이었던 셈이다. 그런 유영국이 살았더라면 이중섭 보다 두 배 이상 살아낸 김병기에게 상수(上壽) 덕분에 뒤늦게 세상 사랑을 더 받게 되었다는 ‘참말’을 건네지 않을까.


1) 또 한 사람의 ‘절친’ 문학수(文學洙, 1916-88)도 동갑에 동문이었다. 유학시절은 일본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미술그룹 ‘자유미술가협회’에 참여하는 등 작가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순수미술을 추구했다. 유학을 마친 뒤는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로 전향했다. 이이가 6.25전쟁 초기에 인공치하 서울로 달려온 ‘미술사업’ 관장의 공산당 간부였고, 몇 번 사경을 넘다가 명륜동에서 겨우 숨어 지내던 김병기를 살려 준 은인이었다. 그는 그때 피난가고 없던 장발(張勃, 1901-2001) 서울대 미대학장 집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대한민국 초기 아카데미 미술의 조장(組長) 집을 접수했다는 그런 상징이었을까. 거기서 문학수를 몰래 만났다.



김병기,살아야한다,캔버스에 유채,162x112.1cm, 2016


이야기 둘 - 그림에 시가 있는 풍경


김병기,애디론댁의 긴 지평선 The Long Horizon of Mountain Adirondack, 캔버스에 유채, 90x121cm,1983

풍경화의 전형적 원근법에서 벗어난 김병기 화백의 기념비적 풍경화. 나무군락의 근경, 화면 중앙에 펼쳐진 중원의 중경, 그 너머 아득히 자리잡은 산자락의 후경, 이 모든 풍광이 지평을 가르는 한 줄기 선에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매달려 있다. 마치도 빨래줄에 매달려 있는 듯. 지평을 따라 중원에 그어진 가늘고 선명한 선은 전통회화에 대한 '부정의 몸짓'으로 보여지며, 평범하게 보이는 풍경화가 '새로운 미학의 세계'로 반전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 화가 박영남 감상평



만 백설의 개인전은 세상의 화제가 되고도 남는다. 미술관 출입과 인연이 없어 보이는 논객 김동길 교수도 화백의 개막전을 찾아 축사를 했다. 어쩌다 만났던 백세는 대부분 자리보전 중이었는데, 이번엔 두발로 꼿꼿이 서서 작업을 하는 계속 이가 하도 경이로워 당신 남매가 즐겨온 냉면파티를 백세 생일날에 개최하겠다고 약속했다. 개막전과 냉면파티는 여러모로 이색적이었다. 동양정신의 정화로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畫 畫中有詩)”는 소동파의 명구가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구절이지만, 시서화(詩書畵) 삼절이 옛말이 된 지금, 그런 인연은 멸종(滅種)된 줄 알았다. 뜻밖에도 고맙게도 김병기의 경우는 시와 함께 했던 전시회였다.

개막식 날(2016.3.25)에 김 교수는 “전시회 이름 하나로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 했지만, 청풍의 맑은 바람 정도가 아니라 그 기상이 하늘을 치솟는 용의 기세라 백세비룡(百歲飛龍)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침 당신 띠도 용띠라 했으니 하늘을 높이 나는 용이 분명하다”고 치하했다. 그리곤 당신의 애송시 조조(曹操)의 <보출하문행(步出夏門行)> 한 구절을 읊었다. “천리마는 늙어 마구간에 매여서도/ 마음은 천리를 치닷듯/ 열사(烈士) 비록 늙어도/ 큰 포부는 가시지 않았다오.”

이어서 4월 9일 정오, 태평양회관에서 냉면과 빈대떡이 나오는 생일잔치가 열렸다. 김 교수는 인사말로 화백의 존재는 커다란 나무를 닮은 한국화단의 거목이라며 미국시인 킬머(Joice Kilmer, 1886-1918)의 <나무(Trees)> 시 한 수를 영어로 그리고 당신이 번역한 우리말로 암송해 주었다.


“나무 한 그루처럼 사랑스러운/ 시 한 수를 대할 수는 없으리로다// 달콤한 젖 흐르는 대지의 품에/ 굶주린 듯 젖꼭지를 물고 있는 나무// 하늘을 우러러 두 팔을 들고/ 온종일 기도하는 나무 한 그루// 여름이면 풍성한 그 품 찾아와/ 로빈새 둥지 트는 나무 한 그루// 겨울이면 그 가슴에 눈이 쌓이고/ 비가 오면 비를 맞는 다정한 나무// 나 같은 바보는 시를 쓰지만/ 하나님 한 분만이 저 나무 한 그루를”


여기에 문청(文靑)이자 대단한 독서인(man of letters)인 김 화백도 양주동(梁柱東, 1903-77)의 시 한 구절을 따와 답사를 했다. 일세기를 살아낸 심경을 말함이었다. “바닷가에 오기가 소원이더니 급기야 오고 보니 할 말이 없어 물결치는 바위위에 몸을 실리고 하늘 끝닿은 곳을 바라봅니다.”


전시장 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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