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Jae Lee, Ceramic of the Present
오명란 (신세계갤러리 수석큐레이터)
“어디까지 왔니~?!”
어릴 적 불렀던 전래 동요의 한 가락이 한국의 시간과 독일의 시간이 버무려진 이영재의 삶의 화두였다. 여전히 기술과 엄격한 훈련으로 형식에 관한 지식과 시간이 담보되어야 하는 전통 방식의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가로서, 독일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평생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 듯 치열하게 정체성을 고민하며 생각을 다독이는 위안 이었을 것이다.
한 작가의 예술 세계에는 그 개인적인 특성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문화적 뿌리와 맥락이 존재한다. 문화의 속성은 시대에 따라 계속적으로 변화하고, 예술가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새롭게 재정의되는 예술성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철학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현재의 시간에서 모든 것으로부터의 관계를 고민하며 만들어진 것이 이영재의 도자기이다.
독일 뮌헨의 현대미술관(Pinakothek der Moderne) 전시장 바닥에 펼쳐진 1111개의 사발은 개별이 모여 거대한 하모니를 만들었다. 어느 하나 같지 않은, 각자의 이야기를 간직한 사발은 전시 공간에서는 개성적인 모습으로 형태와 색채를 드러낸 예술 작품이 되고, 삶의 공간으로 들어와서는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無) 때문에 그릇의 쓸모(用)가 생겨난다.”는 말처럼 사용하는 사람과의 관계, 공간에서의 관계로 쓸모를 만들어내는 그릇이 된다. 쓰는 사람에 따라 용도가 달라지는 이영재의 사발은 각자 삶의 공간에서 다른 풍경이 되며,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번잡함 속에 더 찾게 되는 한적한 마음을 온기로 가득한 이영재의 그릇에서 찾을 수 있다.
“수학적으로 계산한 형태를 실제로 만들어 눈으로 보면 전혀 달라요. 이상적인 형태를 찾기 위해 계속 물레를 돌렸죠.” 이영재에게 도자기의 형태는 가장 추상적인 인체를 만드는 것과 같았다. 한국과 독일의 전통에서 찾아낸 실질적인 기능과 효율성을 강조한 새롭고 완벽한 형태,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깊고 세련된 색감, 양손으로 감싸 본 사람만이 이영재 그릇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힘을 느낄 수 있다.
평생 정물 그리기에 천착했던 이탈리아 화가 모란디(Giorgio Morandi)는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며 단순함과 고요함 속에 존재의 본질을 찾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모란디의 회화는 빠르게 변화해가는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치를 갖는 본질 찾기. 이영재가 만드는 현재의 도자기의 미래이다.
2019년이면 이영재가 대표로 있는 독일의 마가레텐회에(Margaretenhöhe) 공방이 100주년을 맞이한다. ‘쓰임’이라는 도자기의 숙명을 전통과 현대성, 시간과 공간, 지각과 관념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담아낸 그릇은 독일 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재조명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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