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정재호(건축가)
최근 뉴욕 문화지평에 찾아온 큰 변화 중 하나는 20여년 간의 지속된 확장계획에 힘입어 작년 미트패킹 디스트릭트Meatpacking District 로 이전한 휘트니 미술관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일 것이다. 미술관의 이전 과정 중, 렌조 피아노 Renzo Piano가 설계하 고 5천억원의 비용을 들여 지은 새로운 건물을 둘러싼 떠들썩한 분위기와는 다르게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가 설계한 어퍼이스트 사이드 Upper East Side의 옛 미술관은 한동안 텅 빈 채, 마치 혼이 없 는듯 공허한 모습이었다. 휘트니의 재탄생은 이렇게 과거의 기억과 진 화하는미래의 비전 사이를 오가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휘트니 미술관은 조각가, 수집가이자 저명한 예술 후 원자이기도 했던 거튜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Gertrude Vanderbilt Whitney에 의 해서 1931년뉴욕그리니치 빌리지 Greenwich Village 에 처음 세워졌다. 본래의 미술관은 그 전부터 휘트니 스튜디오 갤러리, 휘트니 스튜디오 클럽 등을 통해 아직 이렇다 할 전시 기회를 갖지 못한 젊은 미국 화가들 의 전시와 활동을 위해 활용되던 공간이었으나, 당시 500여점의 컬 렉션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하고자 했던 휘트니의 뜻이 받 아들여지지 않음으로써 이듬해에 자립된 미술관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휘트니의 가장 값진 컬렉션이 된 미술관 건물은 메트로폴리탄에 의해 올해부터 8년간 사용될 계획이다. 이러 하여 20세기 중반, 뉴욕 대다수의 미술관이 유럽중심의 근대미술을 보이던 시기에 휘트니는 현존하는 자국의 화가들을 위한 미술관을 만든다는 취지로 출범하게 되었다.
미술관의 정체성은 건축물에 의하여 결정적인 성격을 갖는 것처럼 보이기 쉬우나 휘트니 미술관은 유목적이고 가변적인 형태로 진화 해왔다. 1954년에 초창기의 자리를 떠나 뉴욕 모마 MoMA 와 맞다 은 건물로 이전한 후 1966년 마침내 맨하탄 75가에 지난 50년간 휘 트니를 상징해온 건축물을 지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그 러나 늘어나는 미술관 컬렉션을 모두 수용하기에 공간이 부족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차례에 걸쳐서 확장계획을 발표했다. 노만 포 스터, 마이클 그래이브, 렘 쿨하스, 그리고 렌조 피아노까지, 70년대 후 부터 권위있는 건축가들이 확장안을 제시해왔지만 미술관 부지 가 랜드마크 지역에 포함되어 있던 터라 지역주민의 격렬한 반대와 높은 건축비용문제에 부딪혀 계획은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이 와 중에 70년대 초반부터는 맨하탄 금융지구 Financial District에 미술 관의 첫 별관을 설립함과 동시에 필립모리스, 아이비엠, 에퀴터블, 등 미 대기업과의 파트너쉽을 통하여 각 기업의 사옥 로비를 전시공 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기존 미술관 형태와는 차별화 된 개별 적인 위성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여 예술기관으로써의 정체성을 다양 한 형식을 통해 구축해온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은 오늘날의 스미소 니언 런던, 퐁피두 센터 메츠/말라가, 구겐하임 빌바오/헬싱키, 루브 르 아부다비, 등 국제적인 미술관과 도시, 그리고 후원자 사이의 파 트너쉽을 기반으로 상호의 브랜드 가치와 지역의 명성을 높이기 위 해 번창하는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선례로 볼 수도 있다.
이처럼 지역성이 오히려 부각되는 현 시대에, 대중매체가 서술하는 휘트니의 “새로운 집”이라는 타이틀은 뉴욕이 미국의 정착지로써 갖 는 역사적 근원과 맞닿아 있겠으나 한 미술관의 변화에 있어서 더 주 목해야 할 점은 “옛것 과 새것”이라는 근대적 수사에 내재되어 있는 현재성에 대한 고찰과 자기 반성적 역사의식 일 것이다. 마치 브로이 어의 휘트니가 개관한 1966년 당시 뉴욕타임즈의 첫 건축평론가를 맡았던 에다 루이즈 헉스타블 Ada Louise Huxtable이 그의 건축물을 빗대어 쓴“새로운 휘트니”라는 수식어가 회귀하는 듯하다. 그리고 반복의 역사로써 나타나는 휘트니의 재탄생은 산업적 재생산에 기 반을 둔 근대성에도 근접해 보인다. 모던 건축의 한 아이콘으로 인식 되어온 휘트니의 옛 건물은 신기술과 성장의 가속화를 바탕으로 인 류 문명의 재고를 불러온 시대에 지어졌으며 올해부터 메트로폴리 탄 브로이어Met Breuer란 새로운 브랜드를 얻었다. 성장의 추구, 과거로부터의 탈피, 자아의 재인식 등 모더니즘의 시대성속에서, 브로이어의 건축물은 그가 말하는 “화려한 도시의 역동적인 밀림”에서 부터 “거리의 생명력을 예술의 진실성과 깊이로 변환시킨다”는 목적을 지닌 예술의 요새로써 제시되었다. 거꾸로된 지구라트의 형태, 소수의 변칙적인 창을 담은 무거운 석회암 표피, 도시의 거리에서부터 건물을 분리시키는 역할을 하는 해자의 적용, 그리고 그 위를 건너는 다리까지 모든 건축적 요소가 역사적 어휘를 통하여 자율적인 일체성을 지닌 미술관을 구성한다. 표면의 재료가 드러내는 거친 예술성이 모든이에게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도 있지만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적 아름다움을 시사하는 완전체로써의 통일성을 읽을 수 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재탄생한 휘트니 역시 고유의 가치관을 투사 하는 현재의 시대정신(zeitgeist)이 녹아있을 것이다. 피아노의 건축물은 하나의 선박과 같은 형태로 맨하탄 그리드에서 허드슨 강으로 출항할 듯, 건물 주변에 공간적 틈새를 열어 뉴욕의 그 "역동적인 밀림"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 하다. 동쪽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한때 고가 철도로 쓰이던 하이라인 공원 High Line Park이 보는이의 시선을 수평으로 분절시키는데, 이 도심공원은 한 해 5백만명 가까운 방문객을 위한 공공시설일 뿐 아니라 특별한 지역성을 갖는 미술관의 역사적 축으로써, 한때 휘트니 증조부의 소유 아래 뉴욕중앙허드슨강철도회사 New York Central and Hudson River Railroad가 운영하던 도시 기반 시설이기도 하다. 이 철골구조 밑으로는 하늘과 맞닿은 작은 광장과 투명유리로 감싸인 미술관 로비를 지나 서쪽 강가까지 깊숙히 시선이 이어진다. 그 위로는 테라스를 갖춘 전시실이 수직적으로 연속되며 도축소와 시장터가 즐비하던 동네의 옛 건물들 옥상위로 살아 숨쉬는 도시전경을 선사한다. 하이라인 공원을 걸어 북쪽에서부터 다가가면 매끈한 디테일로 짜여진 철골 굴뚝과 특수제작된 냉각탑이 미술관사무공간의 형태를 드러낸다. 또한 그 사이로 여러개의 층으로 형성된 거대한 콘크리트 판넬 벽이 미술관을 관통하며 실내공간을 전시실과 사무실로 가른다. 방문객들이 건물을 순환하는 방식은 브로이어의 건물과도 유사하다. 로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햇빛 가득한 8층 전시실에서부터 외부 계단을 통해 전시실 사이를 오가게 된다. 실내에서는 미술관을 오르내릴때 비상계단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전시 경험의 수평적 움직임을 장려하는 수직적 동선은 건물의 표면을 경계로 실내와 실외, 갤러리와 도시경관을 엮는 역동적인 경험도 선사한다. 보행 플랫폼 역할을 하는 테라스와 주변 건물들로부터 멀어지는 듯 경사진 외관은 미술관의 존재감을 들어내기보다는 종종 관람객의 시야에서 벗어 나며 주변환경과 역사의 자취를 공간 곳곳에 드리운다. 지금까지 건축된 휘트니 미술관중 가장 개방성과 공공성이부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피아노의 새 휘트니 미술관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숭배의 대상으로서의 건축물 보다는 시선의 틀로서, 그리고 시민이 공유하는 도시경험을 기반 삼아 하나의 실험실로써 그 의미를 찾아가고 있다. 이는 이미지의 범람으로 망각이 끊임없이 요구되는 시대의 탈신체적 문화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적 형식에 대한 질문일 수 도 있다. 한 도시의 역사와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한 휘트니 미술관의 변천사는 건축형식으로 파생된 새로운 경험을 통하여 과거의 정재호(건축가) 형식에 한획을 그음으로써 동시대성을 획득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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