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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현대미술관회

서도호의 ‘기억으로 지은 집’

견고하고 유동적인 사적 공간



전영백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DO HO SUH, Installation view, Passage/s, 1 February – 18 March 2017, (Photography Thierry Bal)

개인의 집에서 모두의 집으로: 사적 체험은 보편 작업의 근거


Robin Hood Gardens, 2018, Photo: Ed Reeve; © Do Ho Suh

서울과 뉴욕, 그리고 런던 등 주요 도시를 오가며 얻는 공간적 체험을 건축적 설치로 만드는 서도호(Do Ho Suh: 1962~ )는 최근에도 쉼 없이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그 중 런던 이스트엔드 웜우드가(Wormwood Street) 육교 위에 설치된 <연결하는 집 Bridging Home>은 2018년 9월에서 2020년 8월까지 설치된 공공미술이었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한옥이 런던 도심 속 육교에 아슬아슬하게 얹힌 작업이다. 이는 2010년 리버풀 비엔날레에 선보였던 같은 제목의 작업과 유사하지만 보다 과감한 방식을 취한다. 한옥이 두 건물 사이에 끼인 듯 설치되었던 리버풀 작업에 비해, 이번 런던의 집은 한옥의 전모가 독립적으로 드러나 있고 대중이 가까이 접근하기 쉽다. 아슬아슬하게 얹힌 구조는 시선을 집중시키는데, 이런 공학적 설치는 그가 이미 샌디에고 대학 프로젝트 <별똥별 Fallen Star>(2012)에서 성공했던 경험을 살린 것으로 보인다.1) 작가에게는 제2의 고향인 런던에서 가진 공공미술 전시였기에 개인적 의미가 각별했을 것이다.


자신이 어릴 적 살았던 성북동 한옥을 작품의 모티프 삼아 시작된 서도호의 집 프로젝트는 20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초기 작업은 집단 속 개인의 문제를 다룬 것이 대세였지만, 집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 비교 및 기억의 영역에서 주체와 공간의 관계를 다루는 것으로 심화되었다. 개인적 추억이 어린 한국 전통가옥의 구조를 반투명 천으로 재현한 작품(1999)2), 작가의 뉴욕 작업실을 재구성해 놓은 설치물(2003) 등은 집을 소재로 주체가 겪는 문화 이동을 체험적으로 다뤘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기념 설치작품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속의 집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 within Home>(2013)도 이렇듯 서울의 집과 미국에서 살던 집을 겹쳐 ‘서울 박스’ 안에 설치한 것이다. 자신이 살았던 2개 장소의 집을 천으로 겹쳐 구성한 설치작업이다. 그리고 서도호의 집은 이후 ‘타자의 집’으로 전이되었는데, 그것이 위에 언급한 샌디에고 대학 건물 꼭대기에 비스듬히 설치된 <별똥별>이다. 이는 평범한 미국인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집으로 여길 수 있는 ‘익명의 집’으로, 집단성을 띤 작업이라 할 수 있다.3)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V&A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영상 작업 <로빈 후드 가든: 역전의 폐허 Robin Hood Gardens: A Ruin in Reverse>(2018)는 그의 집이 이제는 ‘공공의 집’으로 진행된 것임을 알 수 있다.4)

요컨대, 그의 집 프로젝트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것은 그것이 개인적 수준을 넘어 타자 및 공공으로 그 지평을 넓히기 때문이다. 체험에 기반한 문화 지역성이 보편성으로 전이되는 지점이 서도호 작업의 핵심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주체의 사적 공간인 집(home)이 갖는 의미를 다층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그의 집은 물리적인 건축 공간 뿐 아니라 은유적이며 정신적인 의미를 담보한다. 그리고 집을 이동시킨다는 독창적 아이디어는 오늘날 주체가 가진 속성과 그 욕망을 잘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반투명 천으로 만든 그의 집은 외부와 내부의 경계가 불명확한 공간을 시각화하며, 서구와 동양,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이분법적 진부함을 벗어나는 구조이다. 여행 가방처럼 접어 이동할 수 있는 집은 정착된 고정성보다 기동성과 유연성이 요구되는 현대인의 정체성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필자가「여행하는 작가 주체와 ‘장소성’」이라는 논문에서 뿌리 없는 노마드가 아닌 집에 근거한 여행 주체를 강조한 바 있지만, 서도호의 작업은 우리 시대의 화두인 이산(離散)이나 유목주의를 다루되 그 부담스런 무게를 덜어내고, 자신의 문화적 뿌리를 긍정하며 집을 새롭게 설정한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5)


서도호의 작업 세계가 풍부한 것은 그가 거친 다양한 전공에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도미, 회화와 조소를 공부했고 건축 설치에 몰두했다. 1997년부터 뉴욕 화단에 작업을 선보이기 시작한 그는 2000년에 뉴욕의 리먼 모핀(Lehmann Maupin)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2001년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및 한국관 작가로 초대, 2002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및 시애틀 미술관 순회전, 그리고 2003년엔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또한 영국 테이트모던(2011), 삼성미술관 리움(2012), 그리고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2017-2018) 등에서 전시를 가졌다. 그는 이미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들어 있다.



기억의 방식, 그 물리적이면서도 개념적인


공간은 몸의 기억과 직결된다. 그리고 몸이 겪는 감각적 경험이 가장 많이 배어있는 곳이 집이다. 집이란 몸의 촉각이 공간을 기억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곳이다. 20년 이상 일관성 있게 탐구해온 서도호의 집 작업은 돌아갈 수 없는 물리적 공간에 깃든 흔적을 기억으로 떠내는 과정을 겪는다. 그의 서울 집은 그 곳을 떠난 후에야 가능한 작업이고, 그의 뉴욕 작업실 또한 다른 곳으로 이주했을 때 제작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공간의 재현은 언제나 뒤늦게 일어난다. 즉 주체가 그 공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가능하단 뜻이다. 공간의 기억이란 부재를 담보로 한다는 역설인 것이다. 그러기에 장소의 재현은 시간상 연기(延期)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기억’의 철학자라 하는 베르그송을 따를 때, 기억은 지성에 의한 자발적 회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미지들과 신체 안에 축적되는 신체적으로 각인된 습관들로 이루어진다. 전자가 마음 속의 그림과 같다면, 후자는 어떤 이미지의 개입 없이 반복되는 행동이다. [...] 베르그송이 “진실한 기억”이라 부른 것은 단지 신체적 습관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신체의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것들을 다시 모아서 의식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체가 없다면 기억은 의식 속에 들어올 수 없다.6)


그런데 서도호의 집 작업은 위의 베르그송이 언급했듯, 신체적 물성에 따른 것이면서도 또한 마음 속 그림과 같이 기억의 매커니즘을 의도적으로 재연한다. 그의 집은 견고한 오브제로 세운 것일 뿐 아니라 천을 재료로 하여 옷을 짓듯 만든 이동하는 집이기도 한 것이다. 내부의 온갖 디테일들을 세심하고 정교하게 손바느질한 집 작업은 그가 여러 문화에서 거주했던 집들 – 뉴욕의 스튜디오, 서울집, 뉴잉글랜드의 집, 베를린의 집 등 –의 기억을 이미지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한 마디로 ‘마음의 그림’이라 할 수 있는 기억의 개념적, 정신적 속성을 표현하기에, 가볍고 반투명하며 유연한 패브릭은 그의 작업에 더없이 적합하다.7) 기억이란 본래 만져질 수 없는 법. 작가가 집을 천이란 재료로 제작한 것은 이런 비물질적인 기억을 물화(物化)하는 데 무척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천의 비결정성과 투과성, 그리고 유동성이 기억의 속성과 가장 닮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의 천 집이 연출하는 재료적 유연성과 은은한 조명 효과는 한옥의 유동적 구조를 특징적으로 잘 드러낸다. 즉, 거주자로 하여금 공간을 안팎으로 명확히 구분치 않고 자연스레 넘나들게 하는 건축인 한옥은 서양 건물과 다른 구조적 특징을 갖는데, 은조사나 갑사 등의 반투명한 천으로 딱딱한 흑벽과 기와를 대치한 것은 전통 가옥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살린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 문화의 기억을 섬세하게 바느질하여 구체화한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클레스 올덴버그처럼 재료의 반전을 통한 지각적 환기라는 형식적 의도를 넘어, 문화적 차이를 내용적으로 보여준다.


요컨대, 지정학적이든 개념적이든 서도호의 집은 떠도는 집이다. 그런데 집이 계속적으로 이동한다면 이를 집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이율배반과 모순을 자초하는 일이다. 그는 “집이란 한 곳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곳에 따라가는 것, 언제나 반복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집이 변치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개념 자체가 환상이라 여긴다. 결국 집이란 마음의 고향, 기억의 보고(寶庫)인 것. 작가는 “인생이란 하나의 긴 여정이자 목적지 없이 그저 통과하는 공간들일 뿐”이라 말한다. 이것이 ‘노마드’의 발언이라기보다 도교나 불교가 깃든 한국적 사유로 들리는 건 필자의 편견이 아닐 것이다. 한국의 문화가 자연스레 녹아있는 그의 세계관에서 또 어떤 작업이 나올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Do Ho Suh, Hub, 260-7 Sungbook-Dong, Sungbook-Ku, Seoul, Korea, 2017, polyester fabric and stainless steel

1) 샌디에고 대학(UCSD)의 공대 건물 옥상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설치된 이 집은 서도호가 최초로 영구 설치한 장소특정적 작품으로 대학의 스튜어트(Stuart) 콜랙션에 속한다. 이 설치작업은 그가 유학 시절 거주했던 로드 아일랜드, 뉴 잉글랜드 지방의 전형적 집 형태를 따라 공동 제작한 것인데, 공학 및 테크놀로지와의 협업으로 이룬 놀라운 건축적 성과라 할 수 있다. 옥상 모서리에 캔틸레버 방식으로 설치되어 바닥의 경사면이 약 5도 정도 기울어진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서도호는 2016년 8월, 서울 용산 CGV에서 이 작업의 설치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이며 필자와 함께 인터뷰 방식으로 작품 설명회를 가진 바 있다.


2) 서도호의 <서울 집/L.A. 집>(1999)은 로스앤젤레스 한국문화원에서 선보인 후, 현재는 LA 현대미술관의 영구 소장품이다. 작업 자체는 정주되었지만, 제목은 여전히 열린 채 여행을 계속한다. 말하자면, 작품이 옮겨지는 새로운 장소의 지명을 계속 덧붙이도록 작가와 계약돼 있는 것이다. 그러니 본래의 <서울집/L.A.집>은 현재 <서울/L.A.집/볼티모어 집/ 런던 집/ 시애틀 집/>으로 길어져 있지만, 다른 도시로 전시될수록 더 늘어나도록 돼 있다. 호평을 받았던 이 작업은 작가의 성북동 집을 옥색 한복 천(은조사)으로 정교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3) 건물 모서리에 위태롭게 위치한 집 내부로 들어가면, 미국 보통 가정의 인테리어가 놀랍도록 유사하게 재현되어 있다. 제작에 관여한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가족사진과, 아이들의 그림들은 이 공간에서 ‘가정’이라는 의미를 극대화시킨다. 미국인들에게 떠오르는 일반적인 집의 모습, 즉 세대를 이어 내려오는 전통적 집을 연상시킨다. 동시에 기울어진 바닥에 서서 평형감각이 교란된 채 초현실적 감각에 빠지게 된다. 방문자는 이 언캐니한 공간에서 실재 같은 집의 편안한 느낌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 깃든 불안함을 감지하는 양가적 감정을 갖게 된다.


4) 2017년 이스트 런던의 브루털리즘 양식으로 지어진 공공 임대주택 ‘로빈 후드 가든’이 철거될 때, 빅토리아 & 알버트 미술관(V&A)은 건물의 건축적 유산을 보존하고자 주택의 3개 층의 일부분과 실내를 레이저로 절삭하였다. 그리고 서도호에게 그 구조 및 실내와 더불어 로빈 후드 가든의 거주민들에 관한 작업을 하도록 의뢰한 것이다. 그는 3개 층 내부를 타임랩스 사진으로 기록하고 이 영상물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2018.05.26.~11.25.), 빅토리아&알버트 미술관(2019.09.07.~10.13.)에서 전시했다. 비디오 카메라를 이용한 녹화로는 2시간이면 끝날 작업을 타임랩스 사진으로 총 40시간 동안 기록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는 그 역사적 공간에 축적된 에너지, 역사, 삶과 기억을 보존하고자 한 것이다.


5) 전영백,「여행하는 작가 주체와 ‘장소성’: 경계넘기 작업의 한국작가들을 위한 이론적 모색」,『미술사학보』, 제 41집 (2013), pp. 165-193.: 전영백,「잊히지 않을 미술작가, 잊을 수 없는 건물 [3] 서도호」,『조선일보』, 2008. 1. 22 일자.


6) 마틴 제이 저, 전영백 외 역 『눈의 폄하: 20세기 프랑스 철학의 시각과 반시각』, 서광사, 2019, p. 264.


7) 이렇듯 공간의 기억을 드러내기 위해 반투명 천을 쓴 이유를 작가의 말에서 확인한다: “결국 천이란 상실과 부재, 무(無)를 다룰 수 있는 재료, 물질적으로 가장 미니멀한 재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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