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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현대미술관회

테이트 모던의 재탄생

Tate Modern Extension, London,Great Britain


이숙경 (Tate Modern 수석연구 큐레이터)

The New Tate Modern Exterior / Courtesy of Tate Photography
Artist Rooms (Level 4) : Louise Bourgeois / Courtesy of Tate Photography

지난 6월 17일은 올해로 열 여섯 해를 맞은 테이트 모던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날이다. 삐긋하게 뒤틀어진 피라미드 모양을 한 11층 높이의 새 건물이 육중한 발전소 건물 곁에 문을 열고 기대에 가득찬 관객들을 온통 새로운 것들로 맞이한 날이기 때문이다. 화이트 큐브도 블랙 박스도 아닌 원형의 지하 ‘탱크’ 공간, 동서남북으로 탁 트인 맨 꼭대기 층의 전망 플랫폼, 높이와 벽 조성이 모두 다른 세 개 층의 갤러리 공간, 미술관 경험을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실험적인 ‘테이트 익스체인지’공간 등, 새 건물은 이미 테이트 모던에 익숙한 관객에게조차도 기대치 못 한 놀라움을 안겼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아 2000년 문을 연 테이트 모던은 영국 근현대미술의 대표 기관인 테이트 갤러리가 본격적으로 국제 현대미술을 선보이기 위해 만든 미술관이다. 1897년 미술품 수집가였던 헨리 테이트 경의 컬렉션을 기증 받으며 만들어진 테이트 갤러리는 20세기 내내 영국을 대표하는 공공 미술관으로서 역할을 해 왔지만, 영국 사회 내에 뿌리 깊이 자리잡은 동시대 미술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미술관으로의 도약이라는 과제를 쌓아 왔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준비를 시작하여 1996년 국제 공모를 통해 당시로서는 무명에 가까왔던 스위스 건축 듀오 헤르족 & 드 뮤론 (Herzog & de Meuron)을 건축가로 선정하면서, 테이트 모던의 꿈은 보다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영국 산업 건축의 대가인 자일스 길버트 스콧 경이 건축한 화력 발전소 건물을 미술관으로 전환하겠다는 발상은, 당시 많은 우려와 놀라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이 건물을 부수는 대신 보존하면서 오늘날의 미술관에 걸맞는 건물로 만든다는 계획을 제안한 헤르족 & 드 뮤론과 손 잡으며, 테이트는 세계 건축사 및 미술관의 역사에 유례없는 성공적 사례를 남기게 되었다.


연 관객수 2백만 명을 예상하며 만들어진 기존 건물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세계 최고치인 평균 5백만 명의 관객을 맞게 되고 테이트의 예술적 명성 또한 국제적으로 급상승하게 되면서, 이 비교적 새로운 미술관을 증축해야 한다는 여론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여타 미술관이 지니지 못한 특유의 공간인 터바인 홀의 장소 특정적 커미션 작업이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연대기나 서양 미술사 대신 비서구 미술과 주제 중심으로 컬렉션을 발전시킨 테이트의 전략 또한 건물 못지 않은 개혁으로 전 세계 미술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본래의 화력 발전소 터 뒷편 지하에 있던 세 개의 연료 탱크를 바탕으로 하여 그 위로 새 건물을 짓는다는 결정을 내린 후, 테이트 모던은 헤르족 & 드 뮤론과 다시 한 번 손을 잡았다. 테이트 모던 건축 이후 세계 전역에서 미술관 및 상업 건물들을 지으며 명성을 쌓아온 이들에게 있어, 이번 의뢰는 어떤 의미에서 더 쉽지 않은 것이었다. 새 건물은 건축적 특성이 강한 화력 발전소의 외관과도 직접적인 병치를 고려해야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피라미드 형태로 위로 갈 수록 줄어드는 미래주의적인 구조, 그러면서도 완전한 네모 바탕이 아닌 한 번 틀어진 형태, 흔히 볼 수 있는 유리 외장 대신 화력 발전소의 본래 외벽을 닮은 벽돌 외장 등을 도입하여,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의미 깊은 혁신을 디자인에 담았다.


기존의 연료 탱크들은 이제 퍼포먼스, 라이브 아트, 뉴 미디어 아트 등 관례적인 갤러리 공간에서 선보이기 어려운 새로운 형식의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는 공간이다. 본래의 구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며 콘크리트 마감으로 로비 형식의 공간을 더함으로써, 탱크 층은 신축 건물의 상징적, 물리적 토대 역할을 한다. 신축 건물의 내부 구조는 이 탱크 층에서 위로 뻗어 나가는 노출된 콘크리트다. 공간적으로나 건축적으로 강력하게 건물을 지지하고 있는 콘크리트 기둥 바깥으로는 외장 벽돌이 그대로 보이는데, 벽돌들은 의도적으로 틈새를 두고 설치되어 편직물이나 레이스처럼 외부 빛을 투과시킨다. 화력 발전소의 본래 벽돌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촘촘히 쌓여 고형의 재질감을 지니는 대신, 이 새로운 벽돌들은 투과적이고 가벼운 건축의 표면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세 개 층에 걸친 갤러리 공간 중 2층 갤러리들은 높은 천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작품 설치에 필요한 기계적 장치들과 건물의 구조적 요소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지만, 높이가 워낙 높아 시각 자체에는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공간을 보다 자유롭게 구획하고 작품 설치 또한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3층과 4층의 갤러리들은 자연광과 인공광을 합성할 수 있는 천장을 갖고 있어서 2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의도적으로 다른 감각을 창출함으로써, 이 세 층은 각기 다른 성격의 작품들을 최상의 방식으로 전시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새 건물에서 또 하나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차이점은 갤러리들을 제외한 여유 공간 및 휴식 공간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원형 계단과 다양한 의자들이 자리하여 보다 자유롭게 전시장 사이를 드나들 수 있고, 함께 온 사람들과 미술관에서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다. 미술관이 미술작품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관객을 위한 공간이라는 생각은, 새 건물의 개관을 계기로 더욱 강조되는 테이트 모던의 철학적 공간 개념이다. 관례적으로 미술관들이 작품을 보존하기 위한 성스러운 공간, 미술에 대해 배우고 교양을 쌓기 위한 전문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반면에, 테이트 모던은 이제 가족 및 친구들이 마음 편히 여가를 즐기는 공간, 미술을 통해 사회 전반을 이해하고 다른 문화 및 다른 삶의 방식에 눈을 떠 볼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기존 건물과 새 건물이 이제 하나의 더욱 큰 건물로 일원화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지향 때문이며, 세 층에 걸쳐 이어진 두 건물을 오가는 중간에 놓인 터바인 홀도, 이제는 보다 개방되고 보다 사회성 짙은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테이트 모던이 이번에도 세계 각지 미술관들의 벤치 마킹 대상이 되리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건축물 자체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미술관 개념의 정립에도 좋은 예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courtesy of Tate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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