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의 ‘피렐리 행거비코카’라는 거대한 예술 공간 역시 도시 재생과 산업 유산 재활용 맥락에서 탄생되었다. 피렐리는 밀라노 비코카 지역에 기반을 둔 자동차 관련 제조 기업이며 대규모 타이어 회사로서 이탈리아를 최고의 산업국가로 이끄는데 이바지해왔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이 그렇듯이 산업 형태의 변화로 1970-80년대의 부흥과 영광을 뒤로 하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며 점차 쇠퇴하자 폐허처럼 오랫동안 문닫고 있던 공장을 드디어 개조하여 2004년 ‘피렐리 행거비코카’라는 설치미술 위주의 대규모 비영리 현대미술공간으로 재탄생 시켰다.
권녕호 작가의 회화는 프랑스 파리Paris라는 예술적 그릇에 한국의 전통 문인화 정신을 담은 만찬의 정경과 같다. 이 서로 합치될 수 없을 것 같은 문화적 이중성은 그 만의 독자적 세계로 현현(顯現)되고 있다. 1981년 파리로 건너가 1997년까지 16년간 파리에서 유학하고 작가활동을 하면서 보낸 권녕호의 궤적을 되돌아 볼 때, 파리의 예술적 전통과 한국적 정신이 자연스럽게 용해되는 결과가 되었으리라는 추론은 전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