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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현대미술관회

이정진의 이름 없는 길

김윤정 (미술비평)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의 길을 자동차 한 대가 달려갑니다. 도시와 도시 사이 인적이 끊어진 길 위에 모래바람을 일며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섭니다. 차 안의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질 않습니다. 사람은커녕 표지판 하나 보이지 않는 낯선 중동의 나라에서 내비게이션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내뱉습니다. Unnamed Road, Unnamed Road, Unnamed Road……. 작가 이정진의 최근작 <이름 없는 길 Unnamed Road>은 주로 네게브 사막과 가자지구 서안에서 촬영된 사진들입니다. 이 사진들은 작가가 지난 20여 년간 작업해온 전작들처럼 황폐하고 인적 없는 풍경이고, 그 장소의 특수성을 명백하게 제공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리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먼 곳의 분쟁지역을 소재로 한 사진이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의 작업 중 가장 정치적일 수 있는데도 어제의 이곳인지 오늘의 이곳인지조차 아리송한 풍경입니다. 시간의 더께를 관통하는 흑백의 땅은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보아온 풍경일까요, 아니면 100년을 채 못 살고 사라지는 인간을 바라보는 풍경의 초상일까요? 이정진의 최근작 <이름 없는 길>은 국제적으로 이름난 사진가 12명이 참여한 프로젝트 “이곳 This Place”의 결과물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지시하는 ‘이곳’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입니다. 프로젝트 발의자이자 참여자인 유대계 사진가 프레데릭 브레너는 이정진, 토마스 스트루스, 제프 월, 조셉 쿠델카, 웬디 이왈드, 로잘린드 솔로몬, 스테픈 쇼어, 파잘 셰이크, 마틴 콜라, 닉 와플링턴, 길레스 페레스 등 동료사진가들에게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2012년 대구사진비엔날레 주제전 전시감독을 지낸 바 있는 샬롯 코튼이 큐레이터로 참여했습니다. 전시는 프라하, 텔아비브를 거쳐 뉴욕으로 향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름과 이름이 부딪히는 수많은 이곳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에 고유한 이름이란 없습니다. 작가 이정진이 보여주는 음 소거된 풍경들은 인간이 피아를 구분하는 편협함을 버리고 자연 앞에 겸허해지기를 바라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본질과 무관한 이름을 붙이기보다 부재로 존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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