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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현대미술관회

루이비통 미술관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France

Arch. Frank Gehry


전영백 (홍익대예술학과(미술사학)교수)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France / Arch. Frank Gehry
30개의 기술적 특허와 최첨단기술로 완성된 Frank Gehry의 루이비통미술관(모형) © Gehry Partners

86세 건축가 프랑크 게리(Frank Gehry)가 설계한 루이비통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은 파리 외곽의 블론느(Boulogne) 숲속 북쪽 끝에 세워졌다. 건물 중앙의 거대한 오디토리움을 포함해서 총 11개의 개별 갤러리들이 4개 층 속에 걸쳐 마련돼 있다. 중산층 거주지역의 시민공원 내에 건설된 이 ‘명품 미술관’은 세계적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2014년 10월, 그 화려한 몸체를 드러냈다.

게리의 건축이 늘 그렇듯 파격적 재료와 해체적 구성을 과시한 루이비통 미술관은 ‘입체주의 물고기’나 ‘빙산’ 등의 다양한 별명으로 불린다. 그리고 비양거리는 투로 ‘돛을 단 미래주의 배’나 ‘산산조각 난 루이비통의 향수병’라고도 하는데, 독특한 게리 건물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건축이라기보다 차라리 ‘조각적인 오브제’라고 해야 어울릴 이 미술관에 대해, 게리 자신은 “공원을 떠다니는 유리 배로 구상했다”고 말한다.


푸루스트(Marcel Proust)가 어린 시절 즐겨 찾던 어린이 공원 옆, 파리의 유서 깊은 장소에 LVMH(루이뷔통 모에 헤네시) 명품브랜드 제국의 수장 아르노(Bernard Arnault)의 개인 미술관이 들어서는 것 자체가 논란거리였다. 억만장자의 자본과 거장의 창작혼이 만나 이뤄진 이 건축물은 약 2천억 원의 자본을 들이고 6년의 시간이 걸려 세워졌다. 미술관은 뜨거운 논쟁 끝에, 결국 55년 후 무상으로 파리 시에 귀속되는 조건으로 지어졌으며, 이 협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정적, 법적 문제를 타결해야 했다. 즉, 숲의 자연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까다로운 법규정은 1층 이상의 건축물을 금지했으므로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법적 문제에 걸려있었다. 그런데 이 건축물 자체가 세계적인 주요한 예술작품이 될 것이라는 기대로 국가적으로 예외적 허용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이러니는 게리의 미술관은 4층이라지만 사실상 그 층간을 명확히 분리하기 힘들고, 또 중앙 홀을 둘러싼 여러 ‘중간 2층(mezzanine)’들로 구성되어 기술적으로는 1층이라 우길 수도 있는 건물이다. 비록 천장이 50미터나 되긴 하지만 말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눈에 띄게 화려한 이 미술관은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스펙터클이다. 게리 건축의 특징으로, 관습이나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즉흥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건축은 미적 자유를 표방한다. 건축적 형태에 대한 그의 대담한 접근은 이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1997년)과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2003년)에서 실현된 바 있었다. 루이비통 미술관의 스펙터클도 이전의 건축들과 유사하게, 구성 뿐 아니라 재료에 기인한다. 우윳빛 12개의 유선형 유리 패널은 정교한 강철 구조와 거미줄같은 나무 프레임에 의해 지탱되며 건축물의 피부를 구성한다. 이 패널들은 바람을 머금은 배의 돛이나 하늘의 구름을 연상시키는데, 그 역동적 형태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표면은 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나뭇잎들과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자연풍경에 조응한다.


게리의 입장에서 이 건물은 야심만만한 말년의 대작이다. 2001년 아르노는 재단의 자문을 받아 빌바오 구겐하임을 방문한 후, 뉴욕의 게리를 만났고, 두 달 후 게리가 파리에 와서 바로 작업의 구상에 임했다. 흐르는 물로 건물의 역동성을 살리려는 그의 첫 영감대로, 건물 앞부분의 계단식 폭포는 이 미술관의 매력이자, ‘입체주의 물고기’라는 별명이 만들어진 이유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건물의 은빛 패널은 물고기 비늘을 연상시키고, 전체적으로 유선형을 이루는 면들의 조합은 물 위를 뛰어오른 물고기를 떠올린다. 아득한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흐르는 물은 이 건축에 없어서는 안 될 생태 환경이다. 물소리는 음악적인데 마치 그 반복된 비트는 관람자를 마취시키는 듯하다. 게리 건축의 자유로운 구상과 즉흥성이 음악에 기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여기에 음악과 건축을 연결하고자 하는 아르노의 열정이 더해, 건물 중앙을 차지하는 350석의 콘서트홀이 조성됐다. 이 홀에는 켈리(Ellsworth Kelly)의 대형 회화가 걸려 있다. 한 마디로 건축, 음악, 그리고 미술이 만나는 공간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공학적 테크놀로지이다.


이러한 창작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배후의 공학은 어마어마하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초음속 항공기를 만드는 최첨단 프로그램을 썼고, 제약 없이 자유로운 건축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30개의 기술적 특허를 받아야 했다. 다만, 이렇듯 과도한 공학과 과학적 집착, 그리고 엄청난 자본의 효율성과 그 가치에 대한 의문이 따른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이 엄청난 노력 끝에 과연 무엇을 얻는가?’에 선뜻 답하긴 어렵다.


그러나 미술애호가에겐, 개성 있는 건축에 설치된 멋진 미술작품을 그 공간에서 감상하기란 놓칠 수 없는 기쁨이다.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은 미술관의 개관 특별전으로 <접촉 Contact> (2014-2015)을 선보인 바 있다. 전시는 끝났지만, 그의 대규모 설치 <지평선 안에서 Inside the horizon>는 건물 전방의 인공폭포와 연결된 그로토(grotto) 부분에 영구 설치 돼 있다.


이 작품은 건물에서 계단식 폭포 쪽을 향해 난 긴 통로를 채우고 있는데, 노란 조명이 빛나는 삼각기둥을 연속적으로 세워놓은 설치작업이다. 그런데 43개나 되는 이 삼각기둥의 두 면은 거울이라, 그 반영에 따른 현란한 스펙터클이 연출된다. 건물의 공간과 물을 배경으로 보이는 나의 모습이 수없이 겹쳐져 보이고, 그 장면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한다. 일종의 숨바꼭질을 하듯 하나의 장면을 포착할 수 없고, 고정된 이미지란 있을 수 없다. 프리즘으로 보는 만화경 속에 건축, 물, 그리고 내 이미지가 분열되고 끊임없이 복제된다. 그런데 이 작품의 감상을 위해 작가가 주는 ‘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모습을 43번 반사시켜 보여주는 지점이 딱 하나 있다는 것이다. 엘리아손은 말한다: “당신이 그 지점을 찾게 되면 작품은 지평이 되고 당신은 그 충만한 길이를 따라 흩어지게 된다. 작품은 일종의 확대거울이 되어 당신에게 자신의 생각을 너머서는 더 커다란 리얼리티를 보여줄 것이다.” 노란 빛을 발하는 엘리아손의 거울기둥을 따라 걸어가며, 그가 말하는 ‘지평’을 찾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의 종합적 꼭짓점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엘리아손이 말하는 ‘더 커다란 리얼리티’라는 개념이, 한계를 모르고 자유분방하게 조형된 게리의 건축 속에 가장 어울린다는 느낌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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