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100주기를 맞아
정영목 (서울대미술관 관장)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 화가 유영국 -
2002년 타계한 유영국 화백의 묘비에는 위의 말만 오롯이 새겨져 있다. 화두(話頭) 같은 이 말이 아마도, 화가 유영국의 모든 것을 압축하여 표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 조치일 것이다. 나의 글은 화가의 이 말을 풀어보려는 것이다.
나는 2013년 2월 22일 위의 묘비를 카메라에 담았다. “산이 내 안에 있다”는 화가의 묘비 말은 나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 날은 화가의 큰 따님 고(故) 유리지 교수의 영결식이 고인의 아버님이 묻히신 같은 산의 초입쯤에 있었는데, 따님의 죽음도 충격이었지만 평소 화가의 작품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던 나에게 위의 묘비명은 무언가 정신을 탁 치고 지나가는 즉흥과 깨달음을 주는 그런 것이었다. 절대, 자유, (순수)추상, 색채, 선, 면, (기하학적)구성 등 산을 그린 유영국의 작품들에 의례 등장하는 수식의 조형어휘를 제외한, 그 이면의 심상(心象)을 이 묘비명은 제대로 담아냈다. 이 짧은 문구는 화가의 성정(性情)처럼 간결하고 쉽고 보편적이면서도, 그 핵심의 맥을 뚫어 내외(內外)를 가로 지르는 관념(觀念)의 표상(表象)이 통쾌하기까지 하다.
산이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리의 산하는 산이 곧 자연이라 말해도 틀리지 않다. 우리의 삶 또한 산의 어느 한 골짜기를 끼고 대대로 살아온바, 자연스레 풍수지리(風水地理)가 관념처럼 때로는 신앙으로 발전 토착화된 것도 다 따지고 보면 산 때문이다. 산은 물을 가르고 그 갈라진 물들이 모여 강이 되니 우리의 4대강 역시 산이 뿌리이자 발원(發源)이다. 때문에 바꾸어 표현하면 산은 곧 우리의 관념이자 표상이며,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을 상정하는 우리의 보편타당한 대표적 메타포(metaphor)라 할만하다. 미술로 말하자면 서구의 자연주의적 또는 사실주의적 “내 앞의 산”이 아니라 앞서 말한 우리의 관념과 문화, 체질이 스며든 “내 안의 산” 즉, 화가 자신의 “마음의 산”을 유영국은 그렸고, 그의 묘비문은 이러한 화가의 심상을 반영한 것이다.
산 얘기를 조금 더 해보자. 우리가 중국 발원의 문인산수/관념산수를 그토록 쉽고 편안하게 흡수하면서도 안견과 안평대군의 <몽유도원>같은 대작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산이 기본으로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중국의 도교와 신선사상이 우리의 건국/단군신화와 어우러져 백두산(白頭山), 태백산(太白山), 소백산(小白山) 등 ‘흰 백’자가 들어간 산 이름이 특히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따라 늘어선 것 또한 심상치 않은 우리의 독특한 종교적 심성이라 할만하다. 즉, 산을 종교적 차원의 믿음으로 까지 확대/재현할 수 있었던 그 마음의 근간 역시 산이 지천에 깔렸기에 가능했다. 한때 서구의 종교와 과학으로 산과 관련한 신앙이 이산(離散)과 미신(迷信)의 늪에 빠져 홀대받은 적도 있었지만,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엔 아직도 그 샤먼의 피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음을 나는 유영국의 산그림에서 보고 느끼면서 오히려 내 스스로가 당황하기도 한다. 그것이 진정 그러한가 아니면 나만 그런가 하고.
이러한 종교적 심성의 느낌은 화가의 추상형식이나 짙고 화려한 색감에 의하여 소멸/감소하기 보다는 근본과 본질을 추구해가는 화가의 마음과 그 마음의 추상적인 전이(轉移)와 충동(衝動) 역시 조형으로 그 본질을 담으려하므로 오히려 신비스럽게 배가하는 느낌이다.
산은 어디에나 있다. 그 높이와 넓이의 규모는 산세(山勢)와 함께 인간에게 다른 개념으로 와 닿는다. 산의 본질은 같지만 개념을 둘러싼 삶의 방식과 문화의 형식이 달라지므로 산을 “내 앞에 놓인” 도전과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자들이 있는가하면, 유영국처럼 마음으로 “내 안의 산”을 화가의 성정답게 진정성으로 그려온, 우리의 산을 닮은 그런 사람들도 있다. 비교하지 말고 느껴라. 그 내면의 진실을. 그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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