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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현대미술관회

하나인 전체

A sense of unity : that is the artist's goal

Eugène Carrière


이 조 경 (현대미술관회 평생회원)



­나는 인물화 그리기를 즐긴다. 꽃도 좋고 풍경도 멋지지만 내게는 사람만큼 무궁무진하고 재미있는 그림소재가 없다. 그리는 동안 나는 내 그림속 대상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점 친해질 무렵 내 그림은 그의 손에 들려진다. 그림을 받으며 좋아하는 그의 얼굴을 보는게 내 기쁨이다.


Eugène Carrière, Intimité, 1889, oil on canvas 130x99cm, 오르세미술관 소장

십여년 전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Musée d'Orsay에서 인물화를 유심히 둘러보던 나는 한 그림앞에서 발이 딱 붙어버렸다. 할머니와 젊은 엄마와 아기, 세 사람을 그렸는데 한 사람인 듯 한 이 분위기라니! 의자에 앉은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고, 엄마는 지금 막 외출에서 돌아온 듯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상체를 곧추세워 아기에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아기는 양팔로 엄마의 목을 끌어 안으며 볼에 입술을 댄다. 안도와 감사, 충만한 행복감과 서로간의 끈끈한 유대감이 세 사람 사이에 흐른다. 태초부터 생명이 이어져 온 시간의 베일인 듯한 어둠이, 장중하면서도 부드럽게 세 사람을 감싸고 윤곽선이 없이 서로에게 흘러들어 한 덩어리로 스며있었다. 할머니의 갈색옷은 배경과 섞기고 엄마의 검정 드레스와 아기의 흰 옷은 빛 속으로 드러난다. 가장 환한 빛은 엄마의 얼굴위에서 아기의 이마로 어깨로 번진다. 그림의 제목은 친밀함(Intimité)이었고, 1889년 프랑스의 상징주의 화가 외젠 카리에르 Eugène Carrière (1849-1906)의 작품이었다. 당시 그의 이름은 내게 생소했으나 그의 그림은 특별한 감동으로 오래 남아 있었다.


지난 5월, 나는 파리의 딸네 집을 방문하면서 그 화가를 집중 탐구해 보고싶었던 그 옛날의 꿈을 떠올렸다. 딸과 화가인 사위도 앞세우고 E. Carrière의 개인미술관을 찾았다. 파리 외곽, 센강의 지류인 마론강가에 Carrière Musée가 있고 바로 옆이 Carrière학교였다. 예약시간에 맞춰 우리가 도착했을 때, 30여명의 고교생들이 단체로 다녀가는 중이었다. 오르세에서 그가 그린 한 점의 그림을 보고도 감동했었던 내가 카리에르의 많은 다른 그림들까지 감상하는 약 1시간 반의 기회는 나에게는 충격일 정도의 감격이었다. 그림들은 거의 다 가라앉은 단색의 명암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그림속 인물들에게서 내면의 많은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 지긋한 프랑스 여성 도슨트가 말했다.


“저도 카리에르의 그림이 좋아 자원봉사하고 있답니다. 저렇게 학생들도 공부하러 많이 와요. 생전의 카리에르는 오귀스트 로댕과 단짝 친구여서 두 사람은 서로의 예술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대요.” 나는 언뜻 떠오른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질문을 했다. “아~ 친구의 조각작품을 보고 한 가지 색깔이 주는 독특한 맛을 알게 되었나봐요! 점토, 대리석, 청동, 무엇이 재료이든 조각작품은 단색이니까요.” 깊은 관심을 보이는 내게 도슨트가 맞장구를 쳐주었다. “맞아요. 그의 그림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세히 그리는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 여러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조화로운 하나됨을 그리는게 그의 목표였지요. 그걸 효과적으로 표현하려고 모노크롬 monochrome의 기법을 썼답니다. 후에 피카소의 청색시대가 나오게 한 선두주자이지요.”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내가 맨처음 그의 그림에서 느꼈던 그 일체감을 그녀도 가장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과연 그의 그림들에서 같은 색깔의 농담의 배합은 그 형태들을 서로 떼어놓을 수 없게하는 마법의 힘이 있는 듯했다.


카리에르가 자기 책에서 말했다. ‘배경과 형태들로부터 ‘하나인 전체’ A single whole를 창조해야 한다. 그리고 각각의 형태는 다른 형태를 반향echo한다.’ 나는 내 그림 속에서 어떻게 하나인 전체를 이룰 수 있을까. 더 많은 애정을 가지고 내 그림속 인물들에게 다가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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